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텀.잘.알의 조언 : 소장각, 에디시옹 장물랭

1925년 출간된 헨델과 그레텔 초판 복각, 사람을 닮은 캄보디아 문자 이야기 ‘크메르 문자 기행’ 등등. 시중의 어떤 서점에서도 만나지 못할 독특한 기획의, 소장가치 10000% 출판물을 만들어내는 소장각, 에디시옹 장물랭 창작자를 만났습니다.
각각 5회차, 19회차 펀딩 경험을 가진 텀.잘.알입니다! 이들의 첫 펀딩은 어땠는지, 텀블벅을 왜 계속 이용하는지, 본인들만의 노하우까지 요목조목 물어왔습니다. 개성 넘치는 기획의 독립출판을 꿈꾸는 이들이라면 정독을 추천합니다!

나의 첫 텀블벅

“새로운 시도와 특별한 소재를 좋아하는 분들이 많은 플랫폼이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Q. 처음 텀블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소장각 : 소장각의 첫 프로젝트는 <크메르 문자 기행>이었습니다. 여행을 워낙 좋아하는 디자이너기 때문에 대학원 재학 시절 졸업 논문 주제로 캄보디아의 '크메르 문자'를 정해 연구했어요. 그 연구를 대중적으로 풀어내 단행본으로 묶어낸 책이 <크메르 문자 기행>이었습니다.
소장각 창작자님의 첫 펀딩 프로젝트인 ‘크메르 문자 기행’ https://tumblbug.com/khmercharactertravels
첫 시도이기도 했고, 생소한 동남아시아 소재여서 ‘실패하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한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콘텐츠를 잘 소개할 수 있을지 이리저리 한참 고민했던 기억이 납니다.
장물랭 : 2017년이었을 거예요. <하루의 설계도>라는 작품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 책은 4도 별색 인쇄에 수입지, 그리고 천양장으로 이루어져 제작비가 상상을 초월했어요. 어떻게 인쇄비를 마련해야 하나 앞이 캄캄했죠. 그러다 정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텀블벅을 해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에디시옹 장물랭 창작자님의 첫 프로젝트인 ‘하루의 설계도’ https://tumblbug.com/editions_jeanmoulin
텀블벅 올리기 전날은 밤새 침대에서 뒤척였죠. ‘프로젝트 올리기’ 버튼을 누르면 어떻게 되는지 전혀 가늠할 수 없었거든요. 난 이렇게 절박한데 은행 대출처럼 복잡한 서류들을 요구하는 건 아닌지, 어떤 것들을 작성해야 하는지, 또 프로젝트가 시작되어도 후원자님들의 관심이 없으면 어쩌지 등을요. 그 버튼을 누르면 제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최악의 상황이 홍수처럼 터질 거 같았답니다. 하지만 별다른 수가 없던 저는 결국 크게 숨을 들이쉬고 버튼을 눌렀죠.
그러자… 저의 우려와는 전혀 다른 시간이 펼쳐지더군요. 어렵지도 않고, 복잡하지도 않았습니다. 심지어 펀딩을 개시하자 지금까지 살면서 제대로 들어본 적도 없는 응원가까지 계속해서 들려왔어요. 그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는 프로젝트를 직접 진행해 보신 분 아니고는 절대 모를 거예요.
Q. 두렵고 불안한 마음을 어떻게 극복하고 성공적으로 진행할 수 있었나요?
장물랭 : 커뮤니티와 메세지를 통해서 계속해서 응원해 주세요. 그게 정말 큰 힘이 됩니다. 사실 출판은 혼자 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지금 제대로 하고 있는가, 이걸 계속해야 하나 의심스러울 때가 많아요. 긍정적인 평가는 판매량에서만 유추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텀블벅 후원자들의 피드백은 굉장히 직접적이고 빨랐어요.
소장각 : 첫 텀블벅에서 생소한 소재를 성공시키기 위해 브런치 연재, SNS 홍보 등 프로젝트 시작 전에 준비를 많이 했어요. 그리고 완성된 결과물을 잘 보여줄 수 있도록 디자인도 신경을 많이 썼고요. 생소한 소재였지만 그 준비 과정에서 콘텐츠의 매력을 충분히 보여줄 수 있었던 것 같아서 두려움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특히 텀블벅 시작을 앞두고 기존에 텀블벅에서 진행되었던 여러 프로젝트를 미리 조사해보았는데요, 새로운 시도와 특별한 소재를 좋아하는 분들이 많은 플랫폼이라는 확신이 들어서 새로운 도전에 더 힘을 얻을 수 있었어요.
Q. 당시 어떤 프로젝트들을 보면서 그런 확신이 들었나요?
소장각 : 텀블벅은 오래전부터 재미있는 프로젝트가 많아서 서포터 입장에서 펀딩을 해왔어요. 그중에서도 대중문화 시장에서는 소위 'B급 감성'으로 불리는 콘텐츠들도 재미있게 공유되고 좋아하는 팬층이 생기는 모습을 보고 유저 입장에서 참 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왜냐면 제가 만들고 싶은 콘텐츠도 대중적이지 않을 프로젝트였으니까요. 동네를 기록한 <낭만서촌>이 거의 최초로 참여한 펀딩이었던 것 같고요, 오컬트 장르에서 엄청난 화제를 일으킨 <검은 사전>도 큰 자극이 되었습니다.

계속 텀블벅을 하는 이유

“지금도 여전히 텀블벅을 이용하는 이유는, 어느새 생겨난 소장각의 팬들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Q. 두 분 모두 여러 해에 걸쳐 다회 펀딩을 열고 있어요. 텀블벅을 계속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장물랭 : ‘한국에 절대로 소개되지 않을 책’을 찾아 출판하는 게 저희가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여러 선배님과 동료들에게 배운 ‘좋은 책’이란 유명한 작가의 책이나 뻔한 클리셰로 도배된 책이 아니라 ‘계속해서 꺼내보고 싶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후가공과 비싼 종이를 쓸 수밖에 없어요. 가뜩이나 상업성도 거의 없는데 비싼 제작비를 감당하려면 텀블벅 후원자님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습니다.
<월드 오브 버드> 프로젝트의 목표금액 달성에 전하는 감사 인사 https://tumblbug.com/editions_jeanmoulin20
이런 취지에 공감해주신, 감히 명예 이사님이라 부르는 고정 후원자님들이 계세요. 어떤 작품이든 열릴 때마다 무조건 응원해 주시는 고마운 분들입니다. 텀블벅을 계속 진행하는 것은 이 분들에게 인사드리기 위함도 있습니다.
또 한가지 텀블벅의 매력은 창작자와 후원자가 같이 성장해 나간다는 점이에요. 앞서 피드백을 즉각적으로 준다고 하였죠. 응원의 메세지 말고도 실수했을 땐 따끔하게 비판의 목소리를 분명히 내시기도 합니다. 쓴소리, 단소리 다양한 의견을 바로 바로 주는 후원자님들 덕택에 지금의 책 만드는 실력을 갖출 수 있게 되었습니다.
소장각 : 처음엔 제작비를 사전에 마련하고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었어요. 그런데 몇 차례 프로젝트를 진행한 지금도 여전히 텀블벅을 이용하는 이유는, 어느새 생겨난 소장각의 팬들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저희 콘텐츠를 좋아해주시는 팬분들의 목소리를 커뮤니티와 댓글을 통해 많이 듣고 있어요. 단순히 물건을 만들어 판매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팬들과 만드는 과정을 함께 완성해간다는 즐거움이 작업을 이어나가는 데 큰 동력이 됨을 느낍니다.
아르누보 시그림책 복간 프로젝트(https://tumblbug.com/songs_of_near_and_far_away)의 제작과정 업데이트 내용에 호응하는 소장각의 후원자들

기대감을 높이고 최고의 대우로 설득하기

“저희의 설득 방법은 ‘절대로 후회하지 않게 해드릴게요!’ 입니다.”

Q. 여러 차례 진행하면서 터득한 나만의 펀딩 노하우가 있있나요?

소장각 : 펀딩이 시작되기 한참 전부터 앞으로 어떤 콘텐츠를 만들어 선보일지를 지속적으로 알리고 있어요. 원고를 미리 브런치에 꾸준히 업데이트한다거나 인스타그램 등에서 스포일러를 계속 하면서 말이죠. 그러면서 차츰 기대감을 높이는 방식이 큰 효과가 있었어요! 실제로 <크메르 문자 기행> <미얀마 8요일력>은 브런치 연재 이후에 텀블벅을 런칭한 사례입니다.
Q. 생각보다 분량이 방대하네요. 텀블벅 펀딩을 염두하고 브런치 연재를 진행한 건가요? 실제 효과가 있었고요?
소장각 : 네. 처음부터 텀블벅 오픈을 염두하고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연재를 시작하기 전에 텀블벅 펀딩 관련 강의를 들었는데요, 프로젝트 시작 전 여러 채널을 통해 지속적으로 콘텐츠 홍보 등 빌드업을 시작한 뒤 프로젝트를 오픈하면 시너지가 있다는 말씀을 들었던 기억이 났습니다. 그래서 브런치 연재를 진행하면서 인스타그램에 지속적으로 노출을 했어요.
인스타그램 팔로워 분들 중에는 아무래도 저와 관심사가 비슷한 분들이 많다보니, 텀블벅까지 이어지는 좋은 홍보 방법이 된 것 같습니다. 이미 브런치와 인스타그램에서 눈여겨봤던 콘텐츠이기 때문인지, 텀블벅을 오픈한 뒤에 책으로 소장하고 싶어하던 콘텐츠를 펀딩할 수 있어서 좋았다는 반응을 많이 듣게 되었습니다.
개인 인스타그램을 통해 소개한 <미얀마 8요일력> 연재 홍보 내용
Q. 장물랭님의 펀딩 노하우는 무엇인가요?
장물랭 : 크라우드 펀딩이이란 말그대로 여러 사람들로부터 자금을 유치하는 일이에요. 그래서 기본적으로 ‘설득’을 해야 합니다.
사실 텀블벅 이용자들은 연령대가 높지 않아 경제적으로 자유롭지 못한 분들도 많아요. 큰 마음먹고 후원해주시는 것이죠. 거듭 말씀드리지만 너무 감사한 일이죠.
그래서 저는 저희 프로젝트가 후원자님들 대접 덜 해줬다는 소리 듣는 게 싫어요. 마음도 중요하겠지만, 저는 물질적인 측면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딴 데 가서 자랑할 수 있을 만하게 최대한 알차고 저렴하게 꾸리려곤 합니다.
예를 들면, 랩핑에 스티커도 붙이고, 엽서도 넣고요. 사전에 얘기하지 않은 리워드를 추가할 때도 있습니다. 마치 선물을 받은 것처럼요! 질적으로도 좋은 작품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양적으로도 포만감을 느끼실 수 있게 준비하곤 해요.

작은 목표로 꾸준하게

“우리에게 필요한 건 제작비용 마련이에요. 그거면 계속 나아갈 수 있으니까요.”

Q. 텀블벅을 통해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있는 분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으신가요?

소장각 : 조금은 가볍게 시작하는 건 어떨까요? 너무 큰 프로젝트를 기획해서 힘에 부치는 일보다, 작게라도 여러 번 시도를 해보면서 팬들을 모으고 반응을 살피는 방식이 꾸준히 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텀블벅에는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많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해보시면 좋겠어요. 미래의 팬들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답니다!
20년 처음 프로젝트를 열고 22년까지 5차례 출판물을 텀블벅을 통해 제작했다.
장물랭 : 개인적으로 텀블벅 창작자들 중에서 가장 멋있다고 생각되는 분이 ‘닷텍스트’의 ‘더쿠’님이세요. 더쿠님이 굉장한 이유는 엄청난 펀딩 금액 달성이 아닙니다. 사실 그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죠. 더쿠님은 지금까지 18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126개의 프로젝트를 후원했어요. 엄청난 숫자입니다. 전 그분은 텀블벅의 가치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바로 ‘지속가능성’입니다.
텀블벅을 통해 큰 후원금을 모을 수도 있습니다. 그럴 수 있다면 그렇게 하세요.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제작비용 마련이에요. 그거면 충분합니다. 그거면 계속 나아갈 수 있으니까요.
헨델과 그레텔 초판 복간 프로젝트에 필요한 제작 예산 내용 https://tumblbug.com/editions_jeanmoulin18
텀블벅을 통하지 않고 지금까지 모아두었던 돈으로 무언가 시작하는 것도 좋겠죠. 그러나 현실적으로 문화, 예술 부문은 자리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오히려 투잡을 뛰면서 계속해서 자금을 수혈해줘야 해요. 그러다 보면 피로가 누적되고 결국 지치게 됩니다.
텀블벅과 후원자님들은 작게는 지금 진행중인 프로젝트에 도움을 주고 있지만, 멀리 보면 동료 창작자들이 앞으로도 계속 이 일을 할 수 있게끔 응원해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최고의 시스템이 기다리고 있는데 안 할 이유가 없겠죠, 텀블벅은 필수입니다!

두 분 모두 좋은 말씀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올해도 텀블벅 계획이 있으신가요?

소장각 : 작년에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셨던 ‘아르누보 시그림책’ <멀고도 가까운 노래들> 리처드슨 작가의 초기작이라 할 수 있는 <Sun Moon and Stars>를 복간하는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소장하고 싶은 아름다운 책을 정성스럽게 만들어서 팬분들의 응원에 보답하겠습니다 :)
장물랭 : 국내에 최초로 소개된 ‘카이 닐센’의 작품들과 유럽의 독립출판물을 소개할 생각이에요. ‘데클 엣지’(깔끔한 재단이 아닌 내추럴한 재단) 등과 같은 전통적인 기법을 살려 지금까지보다 더 과격한 제작 방식을 도입하려 합니다. 많이 기대해 주세요!
두 창작자님의 다음 프로젝트가 기대되시나요? 아래 프로젝트 보러가기를 통해 ‘팔로우’해보세요! 다음 펀딩이 오픈될 때 알림을 바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소장각
소장하고 싶은 ‘작은 책들의 집, 소장각’은 그래픽 디자이너 노성일이 운영하는 1인 출판사 겸 디자인 스튜디오입니다. 소장 노성일은 낮에는 책을 만들고 밤에는 동남아시아 시각 문화를 덕질합니다. ‘주변부’에 집중하여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독창적인 문화와 이야기를 담은 아름다운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instagram @sojanggak / sojanggak.kr
에디시옹 장물랭
프랑스와 영어 번역팀 ‘해바라기 프로젝트’에서 설립한 출판사입니다. 고집스럽게 다른 출판사가 내지 않을 만한 책만 소개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작은 출판사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주로 출간하는 책은 유럽과 북미의 독립출판물과 어른들을 위한 동화책입니다. 하지만 책이 가진 물질적인 측면을 강조하기 위해 종이와 잉크, 인쇄와 제본을 연구하며, 이를 위해  20세기 초반의 책들을 꾸준히 복각하기도 합니다. 크고 작은 출판 워크숍을 진행하여 여러 독립출판 작가들에게 제작 및 유통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기도 합니다.
instagram @editions_jeanmou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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